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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the Maid Cafe!

Salt

“써니! 써니, 써니, 써니!”

오, 신이시여. 그는 웃음기 어린 루카의 목소리가 이토록 반가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부산스러운 인파에서 일행을 찾는 수고를 조금이라도 줄여준다면 그게 평소에 제 고막을 먹먹하게 만드는 루카 카네시로의 화통 삶아 먹은 목소리라도 상관없었다. 둘도 없는 친구-여러 가지 의미로-인 루카가 재학하고 있는 사립학교는 인근 주민들에게도 축제로 유명해서, 늘 그 넓은 부지에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방문객들로 소란했다. 사실 그가 루카의 학교 축제에 초대받은 것은 1년도 더 된 일이었지만 실제로 방문하는 건 처음이었다. 작년엔 루카의 육상 대회 경기일이 겹치는 바람에 본인이 참여하지 못한 데다, 써니로서는 친구도 없는 남의 학교 축제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집에 처박혀 비디오 게임이나 하는 게 더 적성에 맞았기 때문이었다.

올해 역시 루카는 학교를 대표하는 훌륭한 기량의 선수였지만, 작년과 같은 불운이 겹치지는 않았다. 올해 경기의 개최 날짜는 작년과 미루어 보아 일주일 정도 앞당겨졌고, 루카는 당당히 첫 번째로 결승선에 통과해 트로피를 품에 안고 돌아왔다. 그리고 관중석에서 목청이 터져라 그를 응원하던 써니도 더 이상 "너도 없는데 내가 거길 왜."라는 핑계를 댈 수 없어 지금 이 소란 속에 제발로 걸어 들어온 참이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그답게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온 루카는 외부인인 써니를 초대한 게 몹시 흥분되는 모양이었다. 루카의 야심 찬 계획은 교정을 걷기 시작한 지 10분도 안 되어 물거품이 되었다. 그는 무엇보다 학교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고 싶은 눈치였지만 녹록지 않았다. 루카는 친화력 좋은 성격답게 들르는 부스마다 한참을 친구들에게 둘러싸여야 했다. 써니로 말하자면 전혀 놀랍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거야말로 이상 현상일 거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다. 곤란한 듯 입을 벌리고 제 쪽을 자꾸만 의식하는 게 느껴져서 써니는 괜찮다는 듯이 손짓을 했다. 

-나중에 연락해

곧바로 문자 한 통을 보낸 뒤 두리번거리던 써니는 가장 큰 교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새로 지어진 게 분명한 교사는 부스들이 자리한 주된 공간인 건지 창문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현수막이 겉면을 덮고 있었다. 로비며 복도며 부스를 홍보하는 학생들로 귀가 먹먹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각종 팸플릿이며 전단지로 금세 손이 부족할 정도였다. 딱히 흥미를 끄는 건 없었다. 게임 동아리는 없나? 축제 안내도가 적힌 팸플릿을 들척이던 써니의 주의를 끈 것은 한껏 애교 가득한 호객 소리였다.

"……."

그는 곧바로 그 부스가 무엇을 홍보하고 있는지 직감했다. 그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거 있지 않은가. 귀여운 여고생들이 잔뜩 나와서 다 망해가는 부 활동을 되살리기 위해 애쓰는, 그런 류의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는, 거의 서비스 에피소드에 가까운 축제 편에서 빠질 수 없는….

"메이드 카페…?"

그렇다. 메이드 카페.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건 메이드 카페를 홍보하는 학생이었다. 애초에 잘못 볼 수나 있을까? 그는 써니가 즐겨 보는 애니메이션에나 나올 것 같은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다. 그 광경을 목도하는 순간 써니는 인파 한 가운데서 어깨를 떠밀리는지도 모르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멎어 있었다. 부산스럽게 흘러가는 사람들의 흐름 사이에 우뚝 서 있는 장신의 남자가 어지간히 눈에 띄었던지 호객하던 메이드가 정확히 써니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표지판을 잡고 흔들었다.

"귀여운 동물 메이드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메이드 카페에 들러보세요냥♡"

귀엽다. 육성으로 튀어나온 진심에 써니는 소스라치며 제 입을 텁 막았다. 솥뚜껑만 한 손바닥 밑에서 꼭 사람 뺨을 갈기는 듯 서슬 퍼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양이 메이드의 양쪽 색이 다른 눈동자가 순간 놀라움으로 커졌다가 도로 장난스럽게 접혔다.

"감사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카페에 놀러 오지 않으실래요냥?"

"아……"

"재미있을 거예요! 선물도 드릴게요. 네?"

​​

​써니는 망설였다. 루카에 대한 일말의 의리가 그를 머뭇거리게 만들었으나, 고양이 메이드의 자그마한 손이 제 소매 깃을 쥐자 써니는 마치 천하장사에게 끌려가는 것처럼 속절없이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메이드 카페는 한 층 위 복도의 교실이었다. 써니는 클래스 이름이 적혀 있을 자리를 올려다보았다. 알록달록한 색지로 꾸며진 플래카드가 대신 위치해 있었고 직접 쓴 것 같은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라는 글귀가 크게 적혀 있었다. 교실 창문 너머로 제 옆에 있는 고양이 메이드와 비슷한 차림을 입은 학생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메이드 카페에 어서 오세요~!"

들어서자마자 귀 끝을 달아오르게 하는 멘트가 이어졌다. 이게 빠지면 메이드 카페가 아니긴 했다.심지어 손님인 것처럼 보이는-당연히 메이드복을 입고 있지 않았으므로-사람들의 시선까지 써니에게로 모이는 건 꽤 고역이었다. 고양이 메이드가 재빨리 그를 흰 테이블보가 깔린 자리로 안내하지 않았다면 민망한 상황 가운데 얼굴이 벌게져 바보같은 얼굴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맹세컨대 고양이 메이드가 권하지 않았다면 써니가 제 발로 이곳에 임할 일은 없었을 터였다. 

써니는 입술을 안쪽으로 말아 물면서 알반의 앞치마에 달린 명찰의 이름을 속으로 몇 번이나 되새겼다. 아루바냥, 아루바냥…. 고양이 메이드는 품에 안고 있던 메뉴판을 펼치며 몸을 숙였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그의 눈높이쯤에서 부드럽게 휘어져 흔들리고 있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되는 듯한 기분에 그는 얼른 바닥으로 고개를 처박았다. 파스텔톤 일색으로 꾸며진 메뉴판에 음식인지 모형인지 모를 귀엽고 아기자기한 디저트 메뉴들이 꽤나 그럴듯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름이 길어서 제대로 읽기조차 힘들었다.

“우와, 알…아루바냥, 손님 데려온 거야?"

나뭇잎 모양의 머리띠를 한, 요정 컨셉의 키가 작은 메이드가 아루바냥을 반기며 아는 체를 했다. 그에 대한 써니의 감상은 이랬다. 동물 컨셉 메이드만 있는 건 아닌가 보군. 그가 관심 있는 건 오로지 고양이 메이드 아루바냥 뿐이었다. 

"주인님, 어떤 걸로 주문하시겠어요냥?"

"아, 아루바냥이 추천해주는 걸로…"

뭐지? 써니 브리스코는 스스로의 입에서 튀어나왔다곤 믿을 수 없는 머저리 같은 목소리를 듣고 충격에 빠졌다. 그가 아무리 유창한 잡담에 자신없는 게 사실이어도 주문 하나 똑바로 못하고 말끝을 흐릴 정도로 수줍음을 타는 인간상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고양이 메이드 아루바냥에게 그런 인상으로 비치고 싶지 않았다.

"부탁합니다."

처음으로 그가 데려온 손님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게 되자 고양이 메이드, 아루바냥의 눈이 동그래졌다. 목소리가 조금 이상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써니는 속으로 자조적인 한숨을 내뱉었다. 곧 다시 웃는 표정을 한 아루바냥이 메뉴판 이곳저곳을 짚어가며 추천 메뉴를 소개해줄 때마다 그의 손목에 매달린 리본 장식이 나풀거렸다.

“그럼 저희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인 말랑말랑 폭신폭신 팬케이크와 해피 스마일 캣 브라우니는 어떠세요?”

"그걸로 주세요.“

"음료는 안 필요하세요? 곰돌이 모양 바닐라 아이스가 올라가는 귀여운 멜론 소다도 있어요!"

"그럼, 그것도 주세요.“

무언가 메뉴 설명을 줄줄 읊었던 것 같은데 내용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억 나는 건 메뉴 이름에 덕지덕지 붙은 의태어를 발음하는 아루바냥이 자꾸 혀를 씹어서 얼굴이 빨개졌고, 그 바람에 흥분한 자신이 테이블을 두 쪽 내버릴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는 것 뿐이다. 그래도 싸인 체키 옵션 유무를 묻는 질문에는 정신을 차리고 강력한 구매 의사를 표현한 그였다.

“메뉴가 준비될 동안 주인님이 심심하시지 않게 간단한 게임을 준비했어요냥♡ 바로바로~ 이심전심 가위바위보!”

써니가 한숨 돌리기도 전에 아루바냥은 빠르게 주문을 전달하고 다시 돌아왔다. 게임이라고 해봤자 별 거 없었다. 거창한 이름이 달려있지만 결국 가위바위보의 일종이었고, 승패가 있는 보통의 게임과 달리 메이드와 손님이 같은 것을 내야만 득점을 할 수 있다는 룰이 있었다. 

“세 번을 할 건데요, 이기는 횟수에 따라 주인님께 선물을 드릴게요냥! 준비되셨나요?”

그러더니 갑자기 뒤에 숨겼던 손을 쑥 내밀었다. 아루바냥은 어느새인가 복슬복슬한 고양이 발 같은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리곤 방글방글 웃으면서 고양이는 가위를 못 내요, 냐~ 하곤 수상한 힌트를 던지는 것이다. 요약하면 주먹이나 보자기 둘 중 하나만 잘 내면 쉽게 게임에서 점수를 얻을 수 있는 구조였다.  

"주인님, 저희는 운명인가봐요! 축하드려요냥!"

그들은 약속한 대로 세 번의 게임을 했고 써니는 게임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 점수를 얻었다. 알바냥이 발을 동동 구르며 꼭 제가 이긴 것처럼 기뻐했다. 그걸 보며 써니 브리스코는 운명이니, 운이니 하는 것을 잘 믿지 않는 자신이 착실히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운명? 운명 맞지. 운명이란 거 사실 존재할지도 몰라. 

음식이 준비되었음을 알리는 청량한 종소리가 자신을 부르자 아루바냥은 구두를 신은 채로도 날래게 주방 쪽으로 향했다. 사실 이런 곳은 눈과 귀가 즐거운 곳에 가깝기에 퀄리티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그였다. 하물며 학생들이 재밌자고 하는 부스인데 어련하겠는가. 

그러나 아루바냥이 가져온 팬케이크는 이름처럼 폭신하게 부풀어 있었고, 김이 피어오르면서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코끝을 맴돌았다. 상단에는 귀여운 종달새 무늬가 찍혀 있었고, 플레이팅도 기대했던 것보다 훌륭했다. 생크림 옆에 민트 잎이 장식되어 있는 걸 보곤 기대가 거의 없던 써니도 조금 놀랐을 정도였다. 다음으로 알반이 내려놓은 것은 고양이 얼굴을 연상시키는 모양의 브라우니였다. 팬케이크보다 조금 밋밋하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짤주머니를 들고 온 알반이 살짝 긴장된 얼굴로 깍지 끝을 브라우니 표면에 가져다 댔다. 케첩 아트 대신 휘핑크림 아트인 모양이었다.

“으~음...”

고군분투하는 얼굴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턱을 괴고 얼굴에 미소가 만연한 채 대놓고 뚫어지게 쳐다봐도 휘핑크림 아트에 온 신경을 쏟고 있는 아루바냥은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한참을 애쓰더니 겨우 그려낸 게 고양이 귀였다.

“허어억...흡.”

그렇다고 숨까지 참을 건 없지 않나? 하지만 노력하는 아루바냥을 비웃는 것처럼 들리고 싶지는 않아서 그는 웃음을 꾹 참았다. 써니 것에 비하면 작은 손으로 짤주머니를 조물거리면서 아루바냥은 고양이의 이목구비도 꽤 괜찮은 모양으로 그려냈다. 이제 수염만 완성하면 이 고행에서 해방될 수 있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그게 가장 애를 먹는 부분이었다. 무려 여섯 개의 직선을 실패 없이 그려내야 하는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작업이었단 소리다. 아루바냥은 숨을 참아서 얼굴이 빨개진 상태였다. 삐뚜름한 직선 5개가 생겼다. 써니는 마음 속으로 작게 속삭였다. 힘내. 마침내 수염 한 가닥만이 남았을 때는 둘 다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린 상태였다. 그러나 알반의 퀘스트는 성공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누군가 교실 문을 벌컥 열어젖힌 것과 짤주머니 끝에서 묘사하기도 멋쩍은 소리가 터져나온 건 거의 동시였다.

"악! 안돼! 하나면 하면 됐는데!"

써니를 상대하던 내내 조근조근 애교 섞인 목소리를 내던 아루바냥이 절규했다. 힘조절에 실패해서 마구잡이로 짜내진 휘핑크림이 고양이 얼굴을 허옇게 뒤덮고 있었다. 이거 꼭…. 크림이 뿌려진 모양은 그냥 망한 게 아니라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저급한 농담에 전혀 관심 없는 써니마저도 그런 연상을 떠올릴 정도면 이 세상에 그러지 않을 사람이 거의 없다는 소리였다. 아루바냥도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괴로운 듯이 침음을 흘리고 있었다. 아루바냥을 방해한 바로 그 장본인은 써니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써니? 써니! 너 왜 여기 있어?!"

"루카?"

"루카아!"

"알반?"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로 교실 안은 금방 정신 사나워졌다. 알반, 알반이구나. 원래 이름도 귀엽다. 그에게 잘 어울렸다. 그보다 둘이 아는 사이였나? 루카가 부츠 신은 발로 저벅저벅 다가와서 서있는 알반과 앉아있는 써니 사이의 공간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게 꼭 달콤한 냄새를 맡고 뒷발로 일어서는 강아지 같아서 써니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옆에 있던 의자 두 개를 끌어왔다.

“루카, 너도 먹을래?”

“응. 알반도 여기 앉아!”

“음? 그래도 되나…?“

말끝을 늘이면서 알반이 음식을 받으러 왔다갔다 하던 간이 주방 쪽을 슬쩍 쳐다보았다. 새의 깃털 장식이 달린 머리핀을 한 에나가 마침 고개를 빼꼼 내밀고 이리 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그녀는 귓속말을 하려다가, 저 금발의 멀대같은 손님이 자신과 고양이 메이드의 관계가 무엇일지 거의 해부하듯 그 광경을 뜯어보고 있는 걸 알고 알반을 적당한 거리에서 멈춰 세웠다.

"알반, 이제 너도 가서 축제 좀 즐겨. 쉬어도 되고."

"에엑? 그래도 돼?"

"매상은 올릴 만큼 올렸으니까."

에나는 어깨 너머로 써니에게 흘깃 시선을 던지면서 말했다. 그녀는 알반에게 여분의 식기를 들려서 테이블로 돌려보냈다. 이미 루카는 써니가 아직 손대지 않은 포크를 건네받고 팬케이크를 맛보면서 칭찬을 늘어놓고 있었다.

“음음, 맛있다!”

“맛있지? 그거 에나가 만든 거야.” 알반이 꼭 제가 만든 양 자랑스럽게 허리에 손을 얹었다.

“에나 누나!”

에나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루카에게 손을 흔들었다. 여기 있는 모두가 루카와 조금씩은 친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써니의 관심은 딱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둘이 무슨 사인데?

“근데 루카, 아까 슈랑 아이크가 너 찾던데?”

“아, 맞다! 깜빡했어!” 에나의 언질에 브라우니 조각을 문 채 루카가 펄쩍 뛰어올랐다. 써니, 알반! 이따 보자! 그는 그 말만을 남기고 올해 단거리 챔피언답게 나는 듯이 교실을 빠져나갔고, 알반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문가와 써니를 번갈아 보았다.

"어라, 갔다….아하하. 루카는 늘 저래."

"저기, 알…반?"

"네, 주인님♡…이 아니고 엄, 루카 친구 맞지? 써니랬나?"

거진 조건반사 수준으로 메이드 모드에서 선회한 알반이 쑥스러운 듯 코끝을 문질렀다. 

“응. 써니. 써니 브리스코.”

“써니! 만나서 반가워! 난 알반 녹스야. 루카랑은 같은 동아리. 굳이 따지면 루카가 선배지만."

"동아리?"

"응. 일본어 동아리인데, 들어오고 나가는 게 자유로워서 규모가 꽤 크거든. 우린 그중에서도 크흠, 서브컬쳐를 좋아하는 소모임을 만들어서 부스를 낸 거야."

"그래서 메이드 카페구나…."

"으응, 그렇지…."

루카랑 별 사이가 아니라는 말에 마음이 놓이는 스스로가 써니는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꼭 뱃속에 들어있던 나비가 부화하려고 꿈틀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써니는 다른 곳에 신경을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이를테면 만난지 몇 시간 만에 알게 된 알반의 풀네임이라든가, 한 톤 낮아졌음에도 여전히 귀엽고 듣기 편한 알반의 진짜 목소리 같은 것들에 말이다. 

“알반, 알반 녹스.”

“응?”

이름을 외우려던 것뿐이었는데, 너무 크게 말한 모양이다. 써니는 다급하게 덧붙였다.

"...혹시 시간 있어?"

알반이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써니, 오해할까 봐 하는 말인데... 나 남자야. 그건 알지? 아니, 별 뜻은 없고. 메이드로 자원한 건 거의 여자애들이었으니까. 혹시나."

써니의 얼굴에 서서히 침울한 빛이 감돌자 알반은 마른침을 삼켰다. 아, 이런 거 싫은데. 하하. 그는 농담조로 덧붙였지만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그러니까… 혹시 착각한 거라면…"

“알반은, 남자는 안되는 거야?“

“뭐?!”

“…하?"

“그…건 내가 할 말인데. 아니, 난 그런 거 상관없어.”

"나도 상관없어."

눈을 깜빡이는 알반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써니가 덧붙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깊이 생각해본 적 없었어. 근데 널 보는 순간 다 상관없어졌어."

알반은 손등으로 입을 가렸다. 횡격막 근처에서부터 열원이 흉곽을 타고 목구멍을 바짝 마르게 한 뒤 뺨을 덥히는 것만 같았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 남자? 이런 남자가 아직 세상에 멸종하지 않고 남아 있었어? 하는 의문으로 가득 찬 머릿속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럼 혹시 내 차림 때문에 그런 거라면…이 귀랑 꼬리도 다 가짜고."

보란듯이 알반은 내부에 얇은 철사가 심으로 박혀 둥글게 모양이 잡혀 있는 꼬리를 쭉 잡아당겼다. 써니 쪽으로 뻗친 꼬리는 빳빳하게 선 채 알반이 툭 치는 손길에 따라 용수철처럼 흔들렸다.

"평소엔 냐냐거리지도 않아. ....아마도."

이 대목에선 목소리가 좀 작아졌는데, 알반 스스로도 그 명제에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가끔은,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나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

"응. …전부 다."

써니의 눈빛은 우직하게 알반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과 관심은 고양이 메이드도 아니고, 상상 속의 다른 사람도 아닌 알반 녹스를 겨냥하고 있었다. 

"나는…그냥, 어떻게 하면 너랑 더 오래 있을지 모르겠어서. 손님이 아니면 나가야 하잖아."

"엣,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널 방해하고 싶지 않았어."

"나도 솔직히 말하면 써니같은 사람 처음 봐."

알반이 킥킥거렸다. 써니의 입가에 따라서 미소가 번졌다. 

"있잖아. 아까 가위바위보 이겼던 거, 아직 선물 안 받았지. 사실, 우리 카페에서 파는 것 중 하나를 공짜로 고르게 해주는 게 상품이거든."

"응."

"생각보다 별로지? 그래도, 이겼으니까. 써니가 갖고 싶은 거 골라. 파는 거라곤 했지만… 줄 수 있는 거라면 노력해볼게."

그 말을 하면서 알반은 수줍은 듯이 말끝을 조금 뭉갰다. 써니는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건 써니가 원하던 것과 분명히 같은 것이었고, 그건 더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음을 의미했다.

"너랑 더 같이 있고 싶어."

"…좋아."

"손 잡아도 돼?"

알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번뜩 제정신으로 돌아와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부스에 놀러온 친구들이며 메이드로 일하는 친구들 모두 그들이 테이블만을 숨죽인 채 바라보고 있었다. 써니의 손이 알반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왔다. 알반의 손이 전부 가려질 정도로 크고 따뜻한 손이었다. 

"끝났어?"

뽀뽀는 나가서 해주세요. 손님! 팬케이크 반죽이 묻은 뒤집개를 든 에나가 웃으며 그들을 쫓아냈다. 써니를 데리고 앞장 선 사람은 학교 구조를 잘 아는 알반이었다. 도망치듯이 복도를 빠져나가는 동안 써니의 손마디가 알반의 손틈 하나하나를 꽉 얽어왔다. 알반은 뒤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같은 표정을 하고 달리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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